나는 왜 부끄러움을 잘 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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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06 17:07 조회1,9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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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되는 걸까]
제11화 나는 왜 부끄러움을 잘 탈까?
부끄러움을 잘 타면 일상생활에서 늘 움츠러들고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부끄러움은 왜 생기는 것일까?
부끄러움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살필 수 있으며 사회생활에 필요한 사회성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부끄러움을 잘 타면,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이는 부정적 이미지, 즉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이미지가 내면 깊이 숨어 있음을 말해준다.
수치심이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감정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들이 수치심을 가장 많이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수치심은 대체로 환경에 의해 형성되지만, 태생적으로 강한 수치심을 갖고 태어나는 이들도 있다.
가령 남자아이를 바라는 집에 여자아이가 태어났을 때 여자로 잘못 태어나 부끄럽다는 수치심을 무의식 깊이 심게 된다. 또는 아주 어릴 적 자신의 존재에 대한 거절을 자주 경험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적절하고 불편한 느낌 때문에 숨고 싶거나 사라지고 싶은 충동에 쉽게 휘둘린다.
수치심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 자격 미달의 부족한 존재로 여기는 게 근본 원인이다.
자신의 존재가 불행을 가져왔다는 메시지를 들은 아이들은 극단적 형태인 ‘나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즉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신념을 갖게 된다. 심한 경우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모두 쓰레기로 변할 것이다.’라는 생각, 자신이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는 신념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자신이 하면 망가진다는 생각에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서 뒹구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의 마음 속에는 수치심이 숨어 있고, 또 수치심 뒤에는 자기를 경멸하고 비웃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부모가 양육과정에서 아이의 존재 자체를 수용하거나 존중해주지 않을 때 아이는 수치심을 가질 수 있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아이는 늘 부족하고 모자람투성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이다운 모습이다. 어떤 면에서는 다른 아이보다 뒤떨어질 수 있고 모자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비교하거나 비난하면서 창피와 무안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른들 보호자들은 비교와 비난으로 아이의 기를 꺾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이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심리학적 용어로 보호자를 ‘보조 자아’라 한다. 엄마는 아이의 보조 역할을 하는 존재이지, 주 자아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가 주체적 존재로서 주도적 역할을 해나갈 때 보호자는 부족한 부분만 채워주면 된다.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들이 보조 자아의 역할보다는 주 자아의 역할을 하려든다. 부모 때문에 주 자아의 자리를 빼앗긴 아이는 수치심과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주 자아의 역할을 빼앗긴 굴욕감은 수치심으로 표현되며 수치심은 부끄러워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 결과 아이는 자신감을 갖고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큰 장애를 겪게 된다.
이미 부모의 품이나 돌봄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성인이 나 자신이 나에게 "보조자아"의 역할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너는 실수해도 괜찮아~"
"너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란다."
이렇게 조금씩 내면의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고, 작은 것이라도 인정해주는 하루가 되어보길 바란다.
- '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되는 걸까?' 중에서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위니캇 정신분석 상담센터
제11화 나는 왜 부끄러움을 잘 탈까?
부끄러움을 잘 타면 일상생활에서 늘 움츠러들고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부끄러움은 왜 생기는 것일까?
부끄러움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살필 수 있으며 사회생활에 필요한 사회성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부끄러움을 잘 타면,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이는 부정적 이미지, 즉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이미지가 내면 깊이 숨어 있음을 말해준다.
수치심이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감정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들이 수치심을 가장 많이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수치심은 대체로 환경에 의해 형성되지만, 태생적으로 강한 수치심을 갖고 태어나는 이들도 있다.
가령 남자아이를 바라는 집에 여자아이가 태어났을 때 여자로 잘못 태어나 부끄럽다는 수치심을 무의식 깊이 심게 된다. 또는 아주 어릴 적 자신의 존재에 대한 거절을 자주 경험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적절하고 불편한 느낌 때문에 숨고 싶거나 사라지고 싶은 충동에 쉽게 휘둘린다.
수치심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 자격 미달의 부족한 존재로 여기는 게 근본 원인이다.
자신의 존재가 불행을 가져왔다는 메시지를 들은 아이들은 극단적 형태인 ‘나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즉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신념을 갖게 된다. 심한 경우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모두 쓰레기로 변할 것이다.’라는 생각, 자신이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는 신념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자신이 하면 망가진다는 생각에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서 뒹구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의 마음 속에는 수치심이 숨어 있고, 또 수치심 뒤에는 자기를 경멸하고 비웃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부모가 양육과정에서 아이의 존재 자체를 수용하거나 존중해주지 않을 때 아이는 수치심을 가질 수 있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아이는 늘 부족하고 모자람투성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이다운 모습이다. 어떤 면에서는 다른 아이보다 뒤떨어질 수 있고 모자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비교하거나 비난하면서 창피와 무안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른들 보호자들은 비교와 비난으로 아이의 기를 꺾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이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심리학적 용어로 보호자를 ‘보조 자아’라 한다. 엄마는 아이의 보조 역할을 하는 존재이지, 주 자아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가 주체적 존재로서 주도적 역할을 해나갈 때 보호자는 부족한 부분만 채워주면 된다.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들이 보조 자아의 역할보다는 주 자아의 역할을 하려든다. 부모 때문에 주 자아의 자리를 빼앗긴 아이는 수치심과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주 자아의 역할을 빼앗긴 굴욕감은 수치심으로 표현되며 수치심은 부끄러워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 결과 아이는 자신감을 갖고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큰 장애를 겪게 된다.
이미 부모의 품이나 돌봄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성인이 나 자신이 나에게 "보조자아"의 역할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너는 실수해도 괜찮아~"
"너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란다."
이렇게 조금씩 내면의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고, 작은 것이라도 인정해주는 하루가 되어보길 바란다.
- '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되는 걸까?' 중에서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위니캇 정신분석 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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